퇴직 첫날,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퇴직'
사실 이 글은 진작에 작성되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마음의 준비도 덜 된 것 같아 시도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마음의 평정을 찾아 비로소 진솔한 마음을 담아 인생 이야기를 다시 써보기로 한다.
들어가며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퇴직하는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날이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졌지만 어느새 그날은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저는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36년간 일하였는데 나의 업무는 회사의 영업채널(개인 및 기업) 중 기업 부문을 총괄 지휘하면서 상당한 좋은 성과를 계속 내고 있었던 기간의 연속이었던 중에 퇴직해야하는 상황을 마주했기에, 당시 제가 짊어져야 했던 마음의 고뇌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임원으로서의 직위와 현재의 성과를 고려할 때 퇴직과는 상관없이 당연히 계속 근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저 역시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에는 통상적으로 규약이 있었고, 노사 합의에 따른 정년 규약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모든 나의 상관들, 즉 한국의 지사장, 동남아 지역의 보스 (실질적인 나의 보스)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총괄헤드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동시에 맡고있던 직위를 떠나고 있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조금씩 희미해져 갈 것이라는 예상도 하였지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몇개월 고문으로 일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저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퇴직을 앞둔 당시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마켓에서 좋은 평판이 있기에 앞으로 더욱 좋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다른 더 좋은 곳에서 일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거죠.' 등 등.
모두 고마운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마음 깊숙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들이 역시나 내 앞에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시에 느끼기에는 아직은 퇴직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를 훌쩍 넘었습니다. 정년퇴직을 60세 전후에 한다고 가정하면 퇴직 이후의 삶이 20~30년 이상 남아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퇴직은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긴 인생 구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마지막 출근
마지막 출근 날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마지막 출근하던 며칠 전부터 책상을 정리하고 개인 소지품을 정리하였지요. 책꽂이 책자, 명함책자, 수북히 쌓인 메모지책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앞에는 게스트를 위한 소파와 탁자, 블라인드, 지금도 덕분에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준 데스크탑 및 개인 PC와 전화기 등.
그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아 보였습니다. 오히려 더욱 조용한 분위기였지요. 그렇게도 자주 울리던 전화벨 소리도 확실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고,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직원들의 목소리도 예전과 달리 이상하게 느낄 시간조차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상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이곳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일부터는 회사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없다는 사실과 회사에 출근할 수 없다는 통보와 함께 회사의 ID도 반납하게 되었지요.
후배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에도 눈물이나 특별한 감정은 없었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떠날 수 있었고, 이제부터는 더욱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나름의 희망을 품고 회사를 나온 것으로 기억됩니다.
퇴직 첫날 아침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똑같은 시간대에 기상을 하였지만 이제는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어요. 그러나 오늘부터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보았습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
그런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양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서류 가방을 챙길 필요도 없었습니다. 휴대전화도 조용했습니다. 급한 이메일도 없었고, 결재를 기다리는 보고서도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멈춘 것도 아니었고, 회사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쁠 이유가 없어졌지요.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다려 주는 이도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한동안은 허전함을 안고서도 편안한 시간을 한동안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한편 수십 년 동안 제 인생의 중심이었던 회사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관심이 아니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며 잊어버리려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당시에 제 머릿속에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깊게 하게 된 동기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도 통화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 소통 속에서 어쩌면 조금은 허전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허전함은 제 머릿속에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지내야 할까'라는 질문을 깊게 던지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직함보다 중요한 것
퇴직 후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혼자만이 상황을 정리하고 오로지 판단에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기다려 주는 이도 없거니와 나의 입장을 대변해 주려는 이가 없기 때문이고 동시에 같이 상의할 동료도 없었던 것이지요.
한 가지 강조하고픈 것은 직장을 떠남과 동시에 직함도 떠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과 지위로 인한 혜택 등이 지금부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환상과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추가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으로서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적인 고민은 명확합니다. 즉,
- 계속해서 수입을 창출해야하는가의 문제,
- 사회로부터 받은 은덕과 보은을 환원하는 삶,
- 진실로 하고 싶었던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 그리고 미뤄 두었던 취미를 시작하거나 배우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등.
이 모든 선택지 속에서 진짜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며, 무엇이 자신을 가치 있게 삶을 이루어 갈 것인지의 고민의 시작인 거지요.
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만약 퇴직을 앞두고 계신 분이 있다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퇴직 준비는 돈만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누구와 시간을 나눌 것인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즐길 것인지, 이런 준비가 훨씬 중요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길고, 또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또는 본의 아니게 일찍 회사를 그만두고 차라리 은퇴 생활에 매진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퇴직 후 가장 놀랐던 것은 전화벨이 멈춘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변화였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매일 연락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도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인간적인 배신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환경이 만들어 준 관계의 특성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즉, 현직에서 떠나오면 그동안 지내오던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아주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이제는 새로이 스스로 개척하거나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업계에서의 활용을 통하여 다른 유사한 사업에 매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퇴직을 위한 생활이 아닌 겁니다.
그렇게 잘해 줄 것 같았던 사회적 지인들은 현직을 떠난 후에는 본인에게 특별한 이익 창출이 아니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한국고용정보원과 여러 은퇴 연구 자료에 따르면 많은 퇴직자들이 경제적인 문제보다 오히려 역할 상실감과 관계 변화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매일 출근하던 장소가 사라지고, 자신을 필요로 하던 조직과 거리가 생기면서 예상하지 못한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퇴 준비는 자산 관리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와 삶의 목적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솔직히 퇴직직후에는 당혹감, 섭섭함, 억울함같은 것이 있었지만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그 뜨거웠던 감정들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인생전체를 조망하는 그런 시선으로 그때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퇴직 첫날은 특별한 사건이 있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퇴직 첫날 아침을 떠올립니다.
그날은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평범한 하루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직장을 떠났지만 인생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속도를 배우기 시작하는 첫날이었다는 것을.
- Always Somewhere -
그렇지요 전 퇴직후 첨에는 마음이 설레었어요 시간이 많으니 여행도 하고싶은것도 실컷하고 잼있게 살리라고 헌데 몇주 지나고나니 할일도 없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던걸요 지금은 또다시 일을하니 사는것 같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네요그날 까지 열심히 살다그분이 오라하면 미련없이 떠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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