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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음악 # 5 : Wind of Change - 내 삶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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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 of  Wind  Artist: Scorpions  "음악은 지나가지만,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음악 에세이 살아오면서 유난히 마음에 남는 음악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Scorpions의 'Wind of Change'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입니다. 자칫 익숙한 일상과 타성에 젖기 쉬웠던 시절,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해 준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시절,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동서 냉전의 긴장이 풀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마저 해체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체제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우리 사회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역시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사회 곳곳에서 변화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나 또한 회사의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외국인 사장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경험은 단순한 노사협상을 넘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소중한 과정이었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현실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나의 직장생활에도 여러 차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과감하게 이직하기도 했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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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기대'  들어가며 얼마 전 아내와 딸아이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이 보내온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내 마음 한구석에서 잊었던 설렘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의 버킷리스트 가장 위쪽에 항상 자리하고 있던 단어가 바로 '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늘 '이제 일을 그만두고 마음 편히 여행 다니시라'고 권하지만, 스스로 정해둔 일에 대한 책임감 탓에 선뜻 자유로워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응원해 주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마음 한쪽에 도사리고 있었던 탓입니다. 나 스스로 설정하고 약속한 그 '마무리 기한'이 이제는 2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 온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갈 시점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무더웠던 일상에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듯 가슴이 다시금 쿵쾅거리기 시작했던 거지요. 과연 내게는 이 버킷리스트를 지워 나갈 체력과 열정, 그리고 현실적인 여유가 갖추어져 있는지 차분히 점검해 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 세계의 도시에서 '느리게 살아보기' 여러분은 어떤 버킷리스트를 품고 계신가요?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바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 1달에서 3달 동안 직접 살아보는 경험'입니다. 이 여행에는 나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관광지를 바쁘게 도장 찍듯 둘러보는 여행이 아닙니다. 안전하고 기후가 따스한 도시나 작은 마을을 골라, 최소 한 달 이상 머물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게으른 삶'을 지향합니다. 그렇기에 숙소와 주변 환경의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생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원활하고 소박한 피트니스센터나 산책로가 근처에 있는 아늑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현지의 소소한 문화...

60+ 이후, 휴대전화에 새롭게 저장되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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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모바일' 들어가며 지나간 시절의 연락처를 비워 낸 주소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60+에 들어선 지금, 내 휴대전화에 새로이 저장되는 번호들은 과거와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전 연락처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가 담겨 있었다면, 지금의 연락처에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업무적 이해관계나 비즈니스, 혹은 필요에 따라 습관적으로 저장하곤 했던 이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롯이 '나의 현재 실생활에 꼭 필요한가', '서로의 삶에 실질적인 온기를 더하는가'가 번호를 저장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생활 반경이 직장 중심에서 동네와 가정으로 재편되면서 처음에는 괜스레 위축되거나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편안함과 실용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주소록은 인맥 관리의 수단이 아니라, 나와 가족의 일상을 지켜주는 작은 생활 안전망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90대 연로하신 어머니의 건강을 위한 병원과 약국 번호, 가까운 주민센터와 행정 민원 창구, 긴급 상황을 대비한 마을 연락망들이 새로 자리를 잡았으며, 나이가 들며 깜박이는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자녀들의 상세한 신상 정보는 물론 사위, 며느리, 사돈댁의 경조사 연락처와 생년월일까지 꼼꼼히 기록해 두는 '가족 핫라인'도 구축해 두었습니다. 타인의 커다란 도움 없이 스스로 일상을 꾸려나가기 위해, 내 삶의 안전망이 되어줄 현실적인 번호들이 주소록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지를 치며 넓어지는 또 다른 인연들 재미있는 사실은 비즈니스 번호를 비워낸 자리에,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관...

휴대전화 연락처를 정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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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락처'  들어가며 현직에서 물러난 지금, 과거의 일과 연관지어 계속 활동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남은 인생 동안 진정 하고 싶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거나, 새로운 삶의 궤적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나 역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 혹은 가슴 한구석에 품어 왔던 꿈을 펼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휴대전화 속에 저장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시절에는 컴퓨터는커녕 휴대폰조차 없었습니다. 수동 타자기로 시작하여 나아가 전동 타자기가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이 환호하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전자계산기가 막 보급되던 시기라 암산과 주판이 대세였고, 훗날 매킨토시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차츰 업무 자동화의 물결이 밀려왔었지요. 손으로 들기조차 벅차던 초기 휴대폰과 고급 승용차의 카폰 시대를 지나, 손안에 쏙 들어오는 소형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는 휴대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메모, 일정, 그리고 일터에서 만난 수많은 고객과 동료의 전화번호까지 내 지난 삶의 모든 기록이 이 작은 기기 안에 빽빽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같은 업종에 종사하며 번호 한 번 바꾸지 않고 살다 보니,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했습니다. 나는 처음에 번호를 저장할 때 그 사람의 특징, 만난 일시와 장소, 나이까지 꼼꼼히 적어 두곤 했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한동안 그 습관을 유지해 왔지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왜 이 많은 전화번호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걸까?',   ...

나누고 싶은 음악 # 4: Mr. Tambourine Man -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한 인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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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Tambourine Man Artist: Bob Dylan "음악은 지나가지만,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음악 에세이 나의 젊은 시절과 함께 지나온 음악입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가 걸어온 삶의 흔적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이 음악은 그때의 내 감정을 받아주고 위로하며 다독여 주었습니다. 인생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나의 젊은 시절에는 늘 이 노래가 따라다녔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나에게는 ‘인생곡’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음악을 들으며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자유를 믿었고 나 자신을 믿으면서, 중간에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도 이 노래가 함께했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니체의 허무주의를 이야기하며 마치 세상의 모든 고민을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날의 치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당시 유행하던 음악다방에 앉아 DJ에게 이 노래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추스르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음악다방 풍경과 친구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악을 들으며 젊은 시절을 보내셨나요? 그 시절에는 자신의 환경이나 능력이 어떤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막연한 꿈을 세웠습니다. 친구들과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저 젊었기에 가능했던 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이 참 좋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을 때면 이 음악을 들으면 되니까요. 'Mr. Tambourine...

오래된 친구들 - 재수 시절, 청춘을 함께 견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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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 들어가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만난 수많은 인연 중에서도, '재수 시절'에 알게 된 친구들은 내게 유독 특별한 의미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가장 예민하고 민감했던 청춘의 길목, '재수'라는 동일한 막막함과 고단함 속에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를 나왔고 성격도 제각각이었지만, 비슷한 처지에서 서로를 다독이던 그 시절의 공감대는 그 어떤 친구 관계보다 깊고 진했습니다. 학원은 달라도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매일 만나 도서관과 공원을 누비고 밥을 같이 먹으며 젊은 청춘이 겪을 수 있는 기쁨과 방황을 함께 나눴습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으로는 재수를 한다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어머니께는 죄송했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가정 형편은 사실 도저히 재수를 꿈꿀 수 없을 만큼 열악했습니다. 당장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형편이었지만, 철이 덜 들었던 나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절박함과 오기 하나로 이름난 재수학원의 입학 시험에 덜컥 응시했습니다. 대학 낙방 후 처음으로 거둔 '합격' 소식에 희열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큰 짐을 얹어드린 것 같아 어머니께 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열악했던 환경 탓에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집을 자주 찾곤 했습니다. 넉넉했던 친구들의 부모님은 가난한 나에게 따뜻한 밥상을 기꺼이 차려주셨고,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사주며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나는 그 고마움의 대가로 친구들의 공부를 돕고, 약속을 엄수하며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 애썼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혹은 살아온 환경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이제는 만나...

오래된 친구들 중 가장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친구들 - 세월이 데려간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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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싶은 얼굴'  들어가며 학창 시절과 청년 시절, 그리고 사회생활을 거치며 만난 수많은 인연 중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연락조차 끊겨 생사조차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여전히 멋있게 삶을 일구고 있거나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보내고 있으리라 마음속으로 가만히 믿어볼 뿐입니다. 살아온 길은 제각각 달랐을지라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아, 그때 그토록 진실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어쩌다 서로의 소식조차 모르는 처지가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오늘은 내 지난날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채워 주었던,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 손끝에 닿지 않는 그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려 합니다. 학창 시절, 다락방의 불을 밝히던 일등 친구 사춘기 시절, 내게는 유독 부럽고 까마득해 보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항상 먼저 손을 들고 완벽한 답을 말하던 친구였습니다. 영어, 수학, 과학은 물론 체육 시간까지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친구는 내 부러움의 대상 1호였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친구와 나는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하루는 시험 기간에 자기 집에 가서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해서, 그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공부를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 친구가 왜 늘 1등을 할 수밖에 없는지 눈으로 확인했지요. 당시로서는 그 친구의 집이 시장통 안에 있었는데 그 친구의 방은 당시 흔하던 일종의 옥탑방, 즉 작은 다락방이 친구의 공부방이었습니다.  그 작은 다락방에는 선풍기 하나와 낡은 책상하고 벽에 세워 둔 기다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