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전진'
들어가며
동계 올림픽을 마치고 바로 '사회로의 환원'이라는 커다란 명제(?) 앞에 이곳저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시청, 구청, 주민센터, 지역사회복지관에 문의하고 지원서를 제출했으며, 노인복지관과도 상의를 거쳤습니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관에서 팟캐스트 운영과 복지관 소식지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활동 도중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솔직히 그전에는 전혀 몰랐던 개념이었습니다. 사회적기업이란 이윤 추구보다는 취약계층과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당시 내가 만난 첫 기업은 발달장애인을 위해 운영되는 자그마한 학원이었습니다. 원장님 부부 둘이서 어렵게 꾸려가는 곳이었습니다. 언어치료와 인지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이었는데, 당시 어려운 경제 여건 탓에 사무직 직원이 턱없이 부족했고 마케팅 활동이나 다양한 서류 작성 등에도 손길이 간절한 상태였습니다. 원장님과 상의 끝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출퇴근 시간을 정해 회사에 필요한 전반적인 업무를 보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기업에서의 업무 및 영업활동 지원
당시 원장님은 외국에서 들여온 아주 유용한 현지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력과 비용이 부족해 번역을 해 두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이었고 내가 합류하자마자 바로 상당한 분량의 번역 업무에 착수했으며, 동시에 마케팅 활동을 위해 인근 학원가에 자료들을 배포했습니다.
완성된 번역본을 본 원장님은 "이 자료는 정말 소중한 자료입니다. 학원이 조금 더 안정되면 그때 꼭 공개하겠습니다"라며 연신 감사의 마음을 전해 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 복지관 팟캐스트 운영에도 참여하고 있었기에, 이 학원의 이야기를 방송 주제로 추천했으며, 직접 방송에 참여해 내용을 발표하며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고려'라는 주제로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원래는 원장님을 직접 스튜디오로 초빙해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아쉽게도 내 고용 기간이 먼저 종료되는 바람에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팟캐스트 운영진 측에서는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고 깊이 있게 발표해 준 것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해 왔습니다.
또 다른 사회적기업은 쿠션을 제작, 배포,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포털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곳이었는데, 전체 직원이 3명에 불과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총무 업무를 보좌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납품할 쿠션을 포장하고 인보이스를 발행하는 일종의 패키징 작업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솔직히 과거 대기업이나 일반 기업에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단순 포장 업무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쿠션 하나가 포장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영세한 사회적기업과 취약계층 직원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소중한 한 걸음'임을 현장에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경험한 사회적기업은 중소형 기업들을 대상으로 MICE(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회) 사업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주로 경영지도사나 기술사 등 전문 인력을 고용하여 기업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들로부터 얻게 된 교훈
외환위기 이후 공공근로와 자활 등 정부 재정 지원에 의존한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이것이 안정적인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영리법인과 단체 등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로 도입된 것이 바로 이 제도입니다. 유럽 국가들의 사회적 기업 제도를 벤치마킹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즉, 개인의 소비가 세상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라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상당수의 사회적기업들은 영세하고 자본력이 부족했으며, 인력풀 역시 턱없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업체가 정부가 주관하고 관여하는 사업에 기대어 겨우 기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사회에 기여하고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자본이 부족해 이 제도를 통해 창업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자본은 결국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영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기업 대표의 요구와 지원자의 충족 요건이 불일치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사업 확장을 위한 제반 여건이 갖춰진 곳은 드물었습니다. 지원자가 새로 합류했을 때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기업 스스로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기업 대표와 솔직하게 경영 상태를 터놓고 일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단기간 머무는 외부 조력자이자 정규직이 아닌 간접고용관계라는 명확한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기업의 진짜 근본적인 핵심 문제에는 접근할 수 없었고, 결국 단순 반복적인 일에 집중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사회적기업의 숭고한 취지에는 적극 동감하지만, 외부 조력자의 위치에서 기업의 핵심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경영의 속사정은 기업의 비밀이기도 하거니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내 경험과 전문성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주변부의 단순 반복 업무에 머물러야 했던 아쉬움도 분명히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거대한 경영의 틀을 바꾸지는 못했더라도, 일손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던 원장님 부부의 든든한 임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들이 정성껏 만든 제품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손을 보탰기 때문입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통합이라는 설립 취지는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자본의 논리 속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온기를 불어넣는 이 착한 기업들이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은 동시에 '나이 제한'이라는 냉혹한 벽을 실감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한계연령에 다다른 지원자를 기업들은 은연중에 꺼려했고, 내가 평생 쌓아온 전공이나 전문지식을 온전히 이식하는 데도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일반 정상 기업에서 해 온 경험과 이들 사회적기업 현장 사이에는 솔직히 커다란 갭(Gap)이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곳에서 지원 요청을 받기도 했으나, 연령 제한과 반복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업무 환경을 보며 다른 방도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기업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다른 질문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이 때문에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기회가 제 앞에 찾아왔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 Always Somewhere -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사연이네요 사회적 기업에서조차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많은 달란트을 가지신분을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은 개선되어야 할것 같네요 오늘도 좋은사연 감사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