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에게서 배운 것들 - 정답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친구'

친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60+ 시점에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가능하다면 공감도 얻고 싶어 아래와 같이 적어 봅니다. 아래의 글들은 실제로 내가 직접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각색하고 주물러서 표현하였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요?  

들어가며

이제는 머리카락들이 희뿌옇게 변해버린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반추하기보다, ‘앞으로 이 친구들을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내 자신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소식이 하나둘 들려올 때마다,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기억해야 할지, 또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질 때도 있습니다.

친구들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각양각색입니다. 배우자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된 친구, 건강을 잃고 세월의 흐름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내는 친구, 편안하게 지내고자 호화로운 실버타운에 들어간 친구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하루 일과 대부분이 병원 방문 일정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여전히 최전선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삶이 좋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도 있지요.

또 어떤 친구는 마누라 잔소리에 움쩍달싹 못하고 기죽어 지내는 친구도 있으며 과거 잘 나가던 때의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모든 권리(?), 경제권 등을 빼앗겨 그냥 산시체(?)로 지내는 친구도 있지요.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만난 친구들과의 자리. 간만에 만났지만 과거처럼 소주잔을 기울이기엔 다들 건강을 생각하느라 주량이 현저히 줄어든 모습도 보이더라고요. 주된 대화 주제는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이슈, 그리고 자식과 아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다짜고짜로 큰 소리로 말하면서 사회적·친구적 위치 선정에 밝은 친구도 있는 반면, 그냥 그런 분위기에서도 편안한 미소로 답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라 자세히는 몰라도 서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그렇지만 젊은 날의 화려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미 저 멀리 가버렸고, 앞으로 어떤 고민들을 안고 지내나라고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너는 어떻게 지내냐"'라고 묻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그러나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 할지라도, 대화를 나눌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마음은 콘크리트와 같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이미 단단하게 굳어졌습니다. 이제는 친구를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즉,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최소한의 공감과 반응만으로도 대화는 충분하다는 생각이지요. 

그래서 오래된 친구와의 대화에는 정답보다 공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오래 남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를 만나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좋은 말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온갖 감언이설하고는 별개로 그저 내 나름대로 현실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냥 느낀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열거해 보기로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 온 친구: 

1) 마음을 주는 말: "너는 지금까지 능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여기까지 잘 지내 온 거야.  자식들 다 시집장가 가서 자식들 낳고 잘 살고 있고, 너는 아직도 마누라하고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잖아. 그리고 게다가 건강하잖아.. 이게 다 네가 베푼 은덕의 결과야. 넌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거야.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지내도록 하거라"... 또는, 

2) 상처를 주는 말: "야, 너는 참 운이 좋은 놈이야.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까지 지내 온 것을 보니 진짜로 너는 재수가 좋은 놈이야~~"

혼자된 친구를 만나면:

1) 마음을 주는 말: "그동안 넌 이제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어. 네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거든. 떠난 이도 너한테 깊이 감사할 거야. 이젠 너 자신을 위해서 조금 더 멋지고 아늑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또는, 

2) 상처를 주는 말: "네가 그 사람한테 속도 많이 썩이며 살았지. 얼마나 속을 썩혔으면 혼자 됐냐? 이제 외로움과 서러움, 후회, 반성을 주안주로 삼고 살아갈 거야". 

아직도 직업전선에서 일하는 친구:  

1) 마음을 품어주는 말: "야, 너 능력 있네. 아직까지  쓰임새가 있고 건강이 허락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아주 잘 된 거야. '돈도 벌고 맛있는 것 사 먹고 친구들 만나서 술도 사고, 좌우지간 멋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즐겁게 다녀라. 건강에도 좋고 그래~~" 또는, 

2) 상처를 주는 말: 너 어떻게 산 거냐? 불쌍하다", '쪼다 짓을 해서 그러니 돈벌어야하지', 이러다 건강 잃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사회적 이슈문제에 관하여:

요즈음 매스컴을 통해서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답답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국가나 사회의 중심은 다음 젊은이들의 몫이라고 인정해 보면 어떨까요? 오히려 꼰대 기질이 남아 있는 고집을 내려놓고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가장 지혜로운 삶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도들이 곳곳에서 쌓이고 쌓이면 서로의 처지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이들에게 기대하며 바라는 온갖 아름다운 말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진짜로 좋은 말들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기에 역설적으로 이런 말들을 빌려와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멋들어진 화려한 말보다는 현실에서 허심탄회하게 느끼는 실질적인 체온이 우리에겐 더 필요합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는데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향기를 결정합니다'라는 말이 좋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친구와의 인연은 거창한 철학적인 언어나 감성이 아닌 서로를 품어주는 실질적인 온기와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러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삶의 질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나로 인하여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삶의 질을 높여 준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공감이었습니다. 화려한 조언이 아니라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들에게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그런 친구가 되렵니다. 세월이 흘러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그런 친구가 되기 위해 조용히 노력하려 합니다. 


                                                                                                 - Always Somew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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