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에게서 배운 것들 - 다양한 친구들

                                         
'친구들' 

들어가며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참으로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고향 친구, 학창 시절 친구, 사회에서 만난 친구, 그리고 나이 들어 새로이 인연을 맺은 친구까지 그 종류도 다채롭습니다.

그중에서도 참 다루기 미묘한 관계가 바로 '사회에서 만난 친구'일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터에서 만난 이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회사의 이권을 위해 고군분투할 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줍니다. 이직을 하더라도 사회생활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계속 유지되곤 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사회적 역할이나 직함이 내려놓아지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수명을 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직에 있거나 이권으로 얽혀 있을 때는 '죽어서도 함께할 친구'라는 미명 아래 온 정성을 다하지만, 그 고리가 희미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차가운 관계(?)로 바뀌고 맙니다. 퇴직 후에도 인연이 이어지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은 채 자연스럽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 지인들을 만나면 '이제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백 명의 연락처를 정리해야겠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문득 나의 지난날을 채워 준 다양한 인연들의 결을 차분히 짚어 보게 됩니다.

자식을 통하여 만난 친구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학부모 인연들이 있습니다. 다행히 나이대가 비슷하고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강한 유대감 덕분에 한때는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하며 '참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기뻐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진학이나 거주지 이동 등으로 각자의 환경을 찾아가면서, 그토록 끈끈했던 동질감도 조금씩 아득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아쉬움이 쌓여 갔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 함께 나눈 시간은 참으로 따뜻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에 그치지만, 그때만큼은 계산 없이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지냈다는 좋은 기억 하나만으로도 그 인연은 충분히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동호회를 통하여 만난 친구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테니스, 골프, 스키, 배드민턴, 조깅, 사이클 등 다양한 운동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골프 모임은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되며 우정과 친목을 다져온 모임이었습니다. 연령대, 직업, 실력(핸디)이 저마다 달랐기에 정기 모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주말마다 연습장을 찾아 실력을 다듬곤 했습니다.

이 모임이 오랫동안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배려의 규칙'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배려하여 피했고, 재력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오롯이 자연을 벗 삼아 운동 자체를 즐겼습니다. 이 동호회를 통해 깨달은 관계의 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왕년에 또는 현재 무슨 일을 했는지 검증되지 않은 과거를 과하게 다루지 말 것

- 자신의 재력을 은근히 내세우거나 거들먹거리며 상대를 무시하지 말 것

- 어떠한 경우에도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뒤에서 하지 말 것

- 불평불만을 줄이고 모임의 화합과 즐거운 분위기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

배우자를 통하여 만난 친구들

결혼 후 아내의 인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친구들도 있습니다. 남편이라는 배경을 매개로 만나 자녀 양육과 생활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가족 같은 친근함을 쌓았습니다.

보통 이런 부부 모임은 여성들이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남편들의 역할은 분위기를 맞추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늘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60+세대에 접어드니 남편들의 만남 참여율이 조금은 저조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름살이 늘었다거나 매번 차려입기 귀찮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오로지 배우자를 매개로 한 만남이기에 남성들끼리 깊은 속내를 나누는 데는 약간의 한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녀들의 경조사에 서로 기꺼이 달려가 축하와 위로를 건네고, 아내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모습은 삶에 큰 온기를 더해줍니다. 타인의 화목한 가정을 바라보며 '내 부부관계도 더 아끼고 가꾸어야겠구나' 하는 따뜻한 동기부여를 얻게 되니, 이 또한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그들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할 뿐입니다.

지역사회에 참여하면서 만난 친구들

은퇴 후 복지관이나 봉사 현장, 혹은 지역 사회 모임에 참여하면서 마주한 새로운 인연들이 있습니다. 이 만남은 지난날의 사회적 관계와는 또 다른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과거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이 '직급과 이권'으로 얽혀있었고, 동창들이 '지난날의 향수'로 묶여있었다면, 지역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눔'과 '지역을 향한 순수한 관심'이라는 공통의 가치로 만난 이들입니다. 명함이나 전직 경력이라는 계급장을 완전히 떼어내고, 오롯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기에 그 어떤 만남보다 담백하고 솔직합니다.

나이가 들어 만난 친구들이지만, 서로의 살아온 삶을 귀하게 여겨 주고 부족한 일손을 도우며 땀을 흘리는 과정에서 깊은 신뢰가 싹틉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지역사회를 위해 발로 뛰는 이들과 함께 차 한 잔을 나누다 보면, '나이 60이 넘어서도 마음을 터놓을 좋은 친구를 새로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커다란 희망을 품게 됩니다.

글을 마치며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인생의 모든 인연은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흘러가는 듯합니다. 한때는 스쳐 지나가는 사회적 인연에 섭섭해하고 차가워진 관계에 마음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입니다. 인연이란 영원히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계절에 맞추어 피고 지는 것임을 말입니다.

60+에 들어선 지금, 굳이 휴대전화 수첩의 친구 목록을 인위적으로 솎아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멀어진 인연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묻어두고,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인연들, 그리고 새로이 찾아온 순수한 인연들에게 한 걸음 더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하여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수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깊이는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곁에 있는 이들의 향기가 곧 나의 향기가 되는 시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인생의 어떤 계절을 함께 지나가고 있는 친구가 계신가요? 

오늘 하루, 오랜 친구나 가까운 이에게 부담 없는 안부 문자 한 통 건네 보시는 건 어떨까요.


                                                                                                 - Always Somewhere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