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 중 가장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친구들 - 세월이 데려간 친구들
'보고 싶은 얼굴'
들어가며
학창 시절과 청년 시절, 그리고 사회생활을 거치며 만난 수많은 인연 중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연락조차 끊겨 생사조차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여전히 멋있게 삶을 일구고 있거나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보내고 있으리라 마음속으로 가만히 믿어볼 뿐입니다.
살아온 길은 제각각 달랐을지라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아, 그때 그토록 진실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어쩌다 서로의 소식조차 모르는 처지가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오늘은 내 지난날의 소중한 한 페이지를 채워 주었던,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 손끝에 닿지 않는 그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려 합니다.
학창 시절, 다락방의 불을 밝히던 일등 친구
사춘기 시절, 내게는 유독 부럽고 까마득해 보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항상 먼저 손을 들고 완벽한 답을 말하던 친구였습니다. 영어, 수학, 과학은 물론 체육 시간까지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친구는 내 부러움의 대상 1호였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친구와 나는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하루는 시험 기간에 자기 집에 가서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해서, 그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공부를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 친구가 왜 늘 1등을 할 수밖에 없는지 눈으로 확인했지요.
당시로서는 그 친구의 집이 시장통 안에 있었는데 그 친구의 방은 당시 흔하던 일종의 옥탑방, 즉 작은 다락방이 친구의 공부방이었습니다. 그 작은 다락방에는 선풍기 하나와 낡은 책상하고 벽에 세워 둔 기다란 책꽂이가 있었습니다.
서 있을 수 없는 작은 다락방에서 친구는 세상의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밤을 새워 책상에 앉아 묵묵히 외우고 또 외우고 있었습니다. 타고난 천재인 줄만 알았던 친구의 1등 뒤에는 그 다락방의 지독한 홀로서기와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도 매일 붙어 다니며 우정을 쌓았지만, 고등학교 입학시험이라는 인생의 첫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거짓말처럼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끔 학창 시절을 돌아볼 때마다 다락방 불빛 아래 있던 그 친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학교 동창회를 통해서든 어떻게든 찾아볼 길은 있었을 텐데, 일상에 쫓겨 게으름을 피우다 세월을 놓쳐버린 나 자신을 자책하곤 합니다.
군 시절, 호쾌한 합을 맞추었던 동기 친구
군 간부 교육을 마치고 전방 부대에 첫 배치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옆 소대의 그 친구는 마침 나와 고향도 같고 나이도 같은 동갑내기였습니다. 사고방식과 훈련에 임하는 자세, 솔선수범하는 성품까지 나하고 합이 참 잘 맞았습니다. 키도 크고 체력도 월등히 좋아, 당시에는 고향 친구나 학창 시절 친구들보다도 훨씬 더 의지하고 깊게 교류했습니다.
우리의 우정은 제대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서울 출신이었던 그 친구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일찍이 사업의 길을 택했습니다. 나는 복학 후 사회 초년생으로 자리 잡기 위해 치열하게 뛰었고, 그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 우유 업체의 대리점을 차렸습니다.
친구의 대리점에 찾아가면 돈을 벌겠노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처리하느라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사업도 크게 번창하고 번듯하게 가정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의 전선에서 정신없이 발버둥치다 보니, 어느새 만남의 간격이 벌어지고 말았던 거지요.
당시 정신을 차린 후 옛 추억이 떠올라 보고 싶은 마음에 그 친구가 대리점을 하던 옛 동네를 찾아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도로가 뚫리고 재개발이 진행되어 옛 매장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특유의 성실함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미국으로 떠난 친구, 그리고 묵은 서운함을 넘어
고등학교 시절, 남들이 보기엔 대세에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변두리로 나돌던 소위 '변두리 그룹'이라 불리던 친구 모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세상 둘도 없이 끈끈했습니다.
팝송에 미쳐 시내 중심가에서 DJ로 이름을 날리던 친구, 사회 초년생 시절 불의의 사건에 휘말려 회사를 그만두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친구, 그리고 외국계 기업에 입사한 뒤 미국 출장을 떠났다 그대로 미국에 안주해버린 친구까지 저마다 독특한 삶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이런 친구 중 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벌써 하직한 친구가 있으며 또 목회 활동을 한다는 친구는 아직도 소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으로 떠난 친구는 이국적인 외모에 일찍 가정을 꾸렸던 친구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미국으로 건너간 후 한동안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원활하지 않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거리가 멀어지며 까맣게 잊힌 듯한 기분에 당시 내 마음속에는 깊은 서운함과 배신감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다시 나가게 되면서, 그 미국에 간 친구와 참으로 오랜만에 수화기 너머로 아주 간단히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아니면 가슴속에 응어리진 옛 서운함 탓인지 몇 마디도 하지 못하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짧은 인사만 나눈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느낌으로는 반가움보다는 어색함이 먼저 올라왔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제는 그 시절의 서운함을 내려놓고 그 친구를 온전히 용서하고 품어 주고 싶습니다. 젊은 날의 오해와 세월의 야속함 때문에 놓쳐 버리기엔 함께 나눈 청춘이 너무나 푸르렀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내가 먼저 다가가 마음의 손을 먼저 내밀어 볼 생각입니다.
마치며
젊은 시절에는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했던 이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전공 과목도 서로 정해서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자고 서로 다짐도 하였었지요. 하지만 집안 형편에 따른 이사와 가파른 도시 개발, 동네의 통폐합 속에 친구들과의 거리는 반강제적으로 멀어져 갔으며 전공 과목은 당시의 약속과는 동떨어지게 다른 것을 전공하였고 삶또한 다른 삶을 살았지요.
60+의 언덕에 서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 나서지 못한 게으른 자신을 책망하게 되며 왜 그 시절의 좋은 추억을 잊어버리고 살았는지 후회도 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하지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친구들도 지금 나와 같은 그리움으로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혹시 나 혼자만의 짝사랑은 아닐까?'
하지만 나만 짝사랑한 것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 시절 그들이 내 삶에 존재해 주었기에 나의 청춘이 한층 더 풍성하고 빛날 수 있었으니까요.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라도 닿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 손을 잡는 용기를 내어 보려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가슴 한구석에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그 시절의 친구'가 있으신가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내 삶을 함께 만들어 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 Always Somew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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